[#053/054] 홍준표가 새롭게 쓴 1,000일의 대구 역사, 정말 이어갈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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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민 기자들의 주장과 생각, 취재 뒷이야기를 전하는 기자칼럼 코너입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독자들과 만나기 위한 뉴스민의 한 방편입니다.
‘홍준표가 새롭게 쓴 1,000일의 대구 역사! 반드시 이어가겠습니다. 영광이었습니다!’
지난 4월 11일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조기 대선 출마를 위해 시장직을 내려놓는 날, 퇴임식장 무대 백드롭에는 환하게 웃는 홍 전 시장 사진과 함께 이렇게 적혔다. 그가 1,000일 동안 대구 역사를 새롭게 쓴 건 분명하지만, 그것을 ‘반드시 이어가겠다’는 대구시 공직자들의 선언은 지난 17일 제헌절에 대구지방법원이 한 판결에 따르면 우려스럽기 그지없다.
▲그가 1,000일 동안 대구 역사를 새롭게 쓴 건 분명하지만, 그것을 ‘반드시 이어가겠다’는 대구시 공직자들의 선언은 지난 17일 제헌절에 대구지방법원이 한 판결에 따르면 우려스럽기 그지없다.
대구지방법원 민사2부(부장판사 손현찬)는 뉴스민이 지난해 대구시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대구시의 항소를 기각하고 대구시의 배상 책임을 다시 한 번 인정했다. 법원은 대구시가 저지른 잘못이 불법적일 뿐 아니라 헌법상 부여된 시민의 권리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다음은 법원 판결문 중 일부다.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정보공개 청구권자인 원고는 헌법상 보장된 알 권리와 참여권, 행복추구권, 인격권 등을 침해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 문서를 제출받아 언론보도에 이용하려는 직업상 활동을 방해받기도 했다. 정보공개법의 보호법익과 입법취지, 피고의 위법한 거부처분으로 인하여 침해된 권리의 헌법적 지위 또는 중요성, 그 침해의 반복성 및 지속기간, 행정심판 인용재결로 뒤늦게 정보를 제공받더라도 회복되지 않은 손해의 발생가능성 등의 사정을 종합하면, 원고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피고의 위자료 지급의무는 충분히 인정된다”
긴 시간이었다. 2023년 홍 전 시장이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면서 추진한 공무원 골프대회에서부터 촉발된 재판은 결국 대구시의 위법성을 다시 증명하는 자리로 끝이 날 걸로 보인다. 변화한 시대에 맞춰 골프대회를 개최하는데 자신이 있었다면, 그와 관련된 정보도 변화된 시대에 발맞춰 투명하게 공개해야 했다. 하지만 홍준표 대구시정은 1,000일 동안 불법한 비공개 결정으로 버텼다.
지난 1,000일 동안 홍 전 시장이 쓴 대구 역사가 많은 부분 이런 식이었다는 게 개인적인 평가다. 홍 전 시장이 곧 ‘대구시’로 군림하면서 대구시정은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을 무시했다. 홍 전 시장 마음에 흡족하지 않은 법률은 지역 국회의원들을 동원해 개정하면 그만이었고, 시민 개개인에게 부여된 헌법적 권리는 무시로 침해됐다.
그 결과로 지난 6월엔 대구퀴어축제조직위원회에 70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확정됐고, 17일엔 뉴스민 기자에게 10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항소심 판결까지 이르게 됐다. 대구시 공직자들은 2023년 6월 그때 500여 명이 우르르 몰려나와 퀴어축제를 방해할 때 그것이 위법하고 위헌적인 일이라는 걸 정말 몰랐을까.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서 이미 위법한 정보 비공개라는 판단을 받은 대구시 공직자들이 동일한 정보를 또 비공개한 건 또 어떤가. 그것이 위법한 일이라는 걸 정말 몰랐을까.
천만에 말씀. 그들은 알았거나,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인사권자의 내심에 따라 기꺼이 위법하고 위헌적인 행위에 나선거다. 그게 아니라면 저리 당당하게 ‘반드시 이어가겠다, 영광이었다’고 할 순 없는거다. 법원도 “원고가 구하는 정보가 공개거부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하고, 담당공무원으로서도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이러한 사정을 쉽게 알 수 있었다”고 짚었다.
물론 인사권자의 내심을 헤아려 그에 따라 움직이는 공직사회의 문화는 당연한 것으로 치부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30일차 기자회견에서 “공직사회는 로봇태권V와 비슷해서 조종석에 철수가 타면 철수처럼 움직이고 영희가 타면 영희처럼 움직인다”고 해서 공감을 얻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공직사회를 구성하는 이들은 로봇의 부속품이 아니라 인간이고, 그들은 법령을 준수하며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국가공무원법이든 지방공무원법이든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의무보다, 법령을 준수하며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해야 할 의무가 우선해서 제시된다. 조종석에 철수가 타든, 영희가 타든 지켜야 할 건 지켜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지 않으면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의 세력 붉은별 군단과 다를 것이 없다.
안다. 그럼에도 그들이 법령보다 철수와 영희의 말에 먼저 복종하며 기꺼이 붉은별 군단의 일원이 되는 이유를. 지난 1,000일 동안 골프대회 관련 정보를 위법하게 비공개하는 일을 진두지휘한 당시 총무과장과 총무팀장은 1,000일 사이 국장과 과장으로 승진했고, 그들처럼 인사권자의 내심을 열심히 살펴 복종 의무를 다한 이들은 1,000일 사이 누구보다 빠르게 선배, 동료를 앞질러 승진했다. 반대로 조금만 내심에서 엇나가면 어느 때고 귀향지 신세가 됐다. 그들이 반드시 이어가겠다는 홍준표가 새로 쓴 역사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을 알기에, 되물을 수 밖에 없는거다. 정말, 그걸 이어갈거냐고.
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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