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순 경일대 특임교수·TBC전 보도국장
“속히 부산으로 내려오시오.” 1952년 5월 27일 이종찬 육군참모총장 은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그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이 총장은 대구 육본을 출발해 피난 정부가 있던 부산으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나흘 전 김창룡에 의해 조작된 부산 금정산 무장공비 사건을 계기로 영남 일대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부산에 전방 1개 사단 병력 출동을 지시했다. 친위 쿠데타 기도였다. ‘정치적 목적’이라며 이 총장은 군 투입을 거부했다.
이 대통령은 “귀관은 어찌하여 나라에 반역하고 나한테 반역하는가”라며 강하게 추궁했다. 이 총장이 답했다. “군대를 동원할 수는 있지만 군의 정치 중립 원칙은 깨지고 그 잘못된 전례는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 기밀 정보 40여 건이 2020년 9월 23일 새벽 국방부 정보망에서 사라졌다. 관계 장관 회의가 열린 직후였다. 군은 다음날 “공무원 이대준 씨가 자진해서 월북한 것으로 본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난달 “재검토해 본 결과 자진 월북을 입증할 수 없었다”며 1년 9개월 전 발표를 뒤집었다.
2019년 7월 동해 NLL(북방한계선)을 넘은 북한 선박을 해군이 나포했다. 청와대는 ‘나포하지 말라’는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로 군 서열 1위 박한기 합참의장을 불렀다. 조사가 4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그것도 5급 행정관의 호출과 조사였다. 창피 주기였다.
군은 사기를 먹고 사는 집단이다. 어떤 첨단 무기보다 우선이다. “역사 앞에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던 이종찬 장군은 이 대통령 압박에도 육군 훈령으로 군의 정치개입을 차단했다. 군의 위상 추락, 불행히도 정치군인 득세에서 시작됐다. 사기는 국민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가 원천이다. 국토 끝까지 밀린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이렇게 지켜 낸 군의 사기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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