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km. 경북 경산에서 출발해 청와대까지 한 달동안 걸어온 거리다.
아들인 정유엽군을 허망하게 먼저 떠나보낸지 벌써 1년. 아버지 정성재 씨는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이 먼 길을 걷고 또 걸은 걸까.
# 통계에 잡히지 않는 죽음
매일 업데이트되는 코로나19 발생 현황. 어느덧 감염자 수가 10만 명에 육박하고 사망자는 1700명에 가까워지고 있다.
매일 400명 가량 확진자가 늘고 있지만 어느순간부터인가 무덤덤하게 느껴진다.
400이란 숫자가 이제는 일상이 된 것이다.
그런데 400이라는 숫자 뒤에 잡히지 않는 또 다른 비극이 있다.
코로나에 감염된 것은 아니지만 의료공백으로 인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 정유엽군은 의료공백의 대표적인 피해자이다.
유엽이의 마지막 일주일…17세 소년은 왜 죽었나
1년 전 코로나19 환자 급증으로 대구, 경북 지역이 대혼란이 빠졌을 때 유엽군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
비가 오는 쌀쌀한 날씨 속에 마스크를 사러 나갔다 온 뒤로 갑자기 고열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정부는 열이 나더라도 병원에 가지 말고 일단 집에서 지켜볼 것을 당부했다.
가족은 그 말을 그대로 따랐다.
열이 42도가 되고 나서야 근처에서 가장 크다는 종합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코로나19 감염여부를 먼저 확인해야한다며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 병원의 선별진료소는 저녁 6시에 문을 닫아 코로나 검사조차 받지 못했다.
그 하루 동안 유엽이의 병세는 급격히 악화됐다.
뒤늦게 대구의 큰 병원으로 옮겨 입원했지만 병원은 13번이나 코로나19 검사를 반복했다.
유엽이는 끝내 숨졌다.
17세 젊은 환자의 코로나 감염 사망 의심 사례로 언론에 대서특필됐지만 모두 오보였다.
유엽이의 사인은 급성폐렴이었다.
# 그후 1년, 달라진 건 없었다
누구보다 건강했던 17세 소년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 비극적인 사건을 겪고서도 우리 사회는 아무 교훈을 얻지 못하는 걸까.
아버지는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길, 그래서 자신처럼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이들이 없길 희망한다.
발걸음 하나 하나마다 유엽이를 생각하며 걷고 또 걸은 이유이다.
아버지는 공공의료의 확충을 말한다.
만약 그때 가까이에 공공병원이 있었다면 코로나가 의심된다는 이유로 유엽이를 그냥 집으로 돌려보내진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유엽이를 즉시 검사하고 그에 따른 후속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민간병원이 코로나19 환자 진료를 꺼러하자 정부는 공공병원을 코로나전담병원으로 지정했다.
그러자 다른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공공병원을 주로 찾던 사회적 취약 계층이 마땅히 진료 받을 곳이 없어진 것이다.
다리 절단 부위에 염증이 생겨 급히 병원을 찾았지만 열이 난다는 이유로 응급실 3곳에서 치료를 거부당한 쪽방촌 주민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전체 병상의 10%도 되지 않는 공공병원이 코로나19 환자의 80~90%를 도맡다보니 생기는 일이다.
# 아버지는 울지 않았다
한 달간의 도보 행진을 거쳐 아버지는 청와대 앞에 도착했다.
3월18일. 유엽이가 세상을 떠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청와대 앞 광장에 열린 기자회견. 아버지는 걱정했다.
마이크를 잡고 아무말도 하지 못한 채 펑펑 울기만 할 것 같아서. 하지만 그는 울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1년 전 유엽이가 우리에게 보여준 상황이 마음속 트라우마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유엽이의 억울한 일을 그냥 가슴에 묻고 한탄한다고 사건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의료시스템으로 인해 발생하는 아픔들을 보며 우리 의료체계가 더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시간 여만에 끝난 기자회견. 간이 책상 위에 놓인 유엽이의 영정 사진 앞에 시민들이 헌화했다.
아버지는 그제서야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